기념일 내용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날짜
매년 5월 19일이다
TMI 5월 19일인 이유는?
측우기의 반포일이 1441년(세종 23) 4월 29일(양력으로 5월 19일)인 것에 연유한 것이다.
의의/목적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선조 때부터 계승된 발명사상을 앙양하여 발명 의욕을 장려하고 보호 육성함으로써 기술의 진보 발전은 물론, 국가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할 목적으로 제정한 법정 기념일이다.
역사/유래
발명의 날 시초
1957년2월 제19차 국무회의에서, 조선 세종 때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든 날을 기념하여 상공부가 측우기 발명일을 기려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제정하였다.
상공의 날로 통폐합되다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으로 [상공의 날]로 통폐합하여 발명사상 함양을 위한 행사를 함께 한다.
민간 주도로 기념일을 주관, 법정 기념일로 채택
1982년 한국특허협회가 한국발명특허협회로 개편되면서 민간 주도로 기념일 행사를 치르다가, 1994년 발명진흥법에 따라 다시 한국발명진흥회로 명칭을 변경해 계속 행사를 주관하던 중 1999년부터 법정 기념일로 채택되었다.
TMI 기념일 행사
행사의 주요 목적이 발명의 중요성을 전국민에게 인식/제고시키는 데 있는 만큼, 해마다 전국발명진흥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린 사람, 발명진흥과 특허기술 개발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금탑/은탑/동탑 산업훈장과 산업포장,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여하고, 발명대왕을 선정한다.
기념일로 알아가는 상식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측우기
간단설명
1440년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세종 24)부터 20세기 초 일제의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 기구로 사용된 도구로,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으며,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 관측 및 보고 체계를 갖추었다.
측우기의 발명 및 도입
측우기 도입 전 측량 방법
우량을 정량적으로 측정하여 보고하는 제도는 측우기 도입 이전에도 있었다. 비가 온 뒤에 당에 비가 스민 깊이를 재어 이를 조정에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측우기가 발명된 계기
하지만 1441년(세종 23) 4월 29일(음력)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왕세자 이향(훗날의 문종 임금)이 우량을 측정하는 정확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그릇에 빗물을 받아 그 양을 재는 방식을 시험하고 있었다. 땅이 빗물에 스민 깊이는 토양의 습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방법으로는 빗물의 양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 연구의 결과가 그해 8월호조에 의해 보고되었고, 이후 그릇의 규격 등에 관한 몇 가지 수정을 거쳐 이듬해 1442년(세종 24) 5월 8일(양력 6월 15일) 측우기를 이용한 전국적인 우량 관측 및 보고 제도가 확정되었다. [측우기]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측우기 규격 추측
측우기는 주철로 된 원통형 그릇으로, 깊이 1자 5치(약 31cm), 지름 7치(약 15cm)로 규격이 정해졌다. 1441년의 원래 구상에 따르면, 깊이 2자, 지름 8치의 그릇으로 좀 더 크게 만들 계획이었으나, 아마도 2자(약 41cm) 깊이로 빗물이 차는 일이 거의 없고 또 빗물을 측정하기에는 그릇이 너무 깊어 규격을 더 편리하게 줄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측우기를 돌로 만든 측우대 위에 올려놓고 비 온뒤 그 속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주척(길이를 재는 자의 한 가지)으로 읽는데, 푼(약 2mm) 단위까지 정밀하게 재어 보고하도록 하였다.
측우기 제도 도입
세종대에는 이상과 같은 표준으로 제작된 측우기와 주척을 중앙의 천문 관서인 서운관과 팔도의 감영에 나누어 주고, 그 이하 행정 단위의 관아에서는 이를 모델로 하여 자기 또는 와기로 측우기를 만들어 설치하도록 하였다. 서운관의 관원과 팔도 감사 및 각 고을의 수령들은 비가 오면, 비 오고 갠 시간과 주척으로 푼 단위까지 측정한 빗물의 수심을 기록하여 조정에 보고하고, 훗날에 참고하기 위해 그 기록을 남겨두도록 규정했다.
이때 반포된 제도에 따라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일이 16세기 말 임진왜란 직전까지 이어졌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몇몇 남아 있다. 서운관이 서울의 우량을 측우기 수심으로 보고한 기록과 전라감사 등 각 도의 감사가 산하 고을의 강우량을 측우기 수심을 보고한 기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측우기 제도 폐지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혼란을 겪으며, 측우기 관련 제도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거치며 측우기는 물론 이를 이용한 우량 관측 보고 자료도 대부분 사라졌다.
측우기 제도 부활
1770년(영조 46) 5월, 당시 영조는 [동국문헌비고]의 편찬을 통해 조선 왕조의 역대 전적과 제도를 정리하고, 조선 초기 임금이 만든 제도를 부활하여 왕조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다. 영조는 특히 세종대에 갖추어진 춘문과 기상 관측 제도를 부흥시키는 데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측우기 제도 복원 사업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측우기 제도를 축소하여 실행
영조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측우기의 규격과 관측 및 보고 제도를 거의 그대로 준수하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전국의 모든 고을에까지 측우기를 설치했던 세종 때와는 달리 영조는 서울의 궁궐과 서운관, 팔도 감영, 강화와 개성의 유수부에만 설치했다는 것이다.
측우기 제도의 끝
이후 측우기를 이용한 관측 및 보고는 1907년 일제의 조선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도입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매일 매일의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140년간의 서울 우량 기록은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장기간의 우량 관측 기록이다. 그 외에 팔도 감영과 유수부 등 지방의 관아에서 올린 우량 기록도 상당량이 남아 있다. 이 보고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집/영인한 [각사등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TMI 측우기 관련 유물
1904년 러/일 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파견되어 이후 일제의 조선통감부 및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을 역임한 기상학자 와다유지는 조선 왕조으 천문/기상관측 제도와 자료를 조사하던 중 측우기와 이를 이용한 관측 기록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조선고대관측기록조사보고]를 포함한 몇 편의 보고서를 통해, 조선이 유럽보다 앞서 측우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서울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최장기 우량관측 기록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렸다.
TMI 유럽의 우량 관측
유럽보다 200년 정도 빨리 이루어졌다. 유럽에서는 1639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B. 가스텔리가 처음으로 측우기를 사용해서 강우량을 측정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TMI 측우기 관련 유물 행적
금영측우기로 불리는 공주의 충청감영 측우기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1971년에야 다시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2020년 2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로 명칭 변경되면서 국보로 지정되었다. 나머지 측우기는 이후 모두 유실되었으므로, 조선 측우기의 현존하는 유물로는 현재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는 금영측우기가 유일하다.
측우대로는 현재 관상감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통영 측우대 4기가 남아 있다.
측우기 발명과 관련된 우량 관측 제도를 만든 이유
정확한 얘기는 없다.
조선시대에 왜 측우기를 통한 우량의 측정과 보고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지키려 노력했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일치된 의견이 없다. 다수의 견해는 측우기라는 표준적 기구를 통해 측정한 전국의 우량을 수합하여 농정의 합리화를 꾀했다는 입장이다.
농정의 합리화라는 추측
1442년 측우기가 도입된 이후, 농사의 풍흉을 감안하여 세율을 조정하는 연분등제가 도입된 것이 그 증거이다.
다른 추측
하지만 측우기의 우량 수치를 통계 처리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농정의 합리화와 과학화를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입장에 따르면, 측우기는 비를 비는 기우제의 도구, 또는 하늘이 내린 비의 양을 통해 국왕의 정치에 대한 하늘의 평가를 엿보는 점성술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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