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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개천절은 사실 단군 조선(고조선) 건국일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by 고효길 2024.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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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목적

서기전 2333년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된 국경일로 매년 10월 3일이다.

TMI 10월 3일인 이유는?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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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개천에 숨겨진 의의/목적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사/유래

개천절의 배경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의 제천단, 구월산의 삼성사, 평양의 숭령전 등에서 각각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 민족은 10월을 상달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로 여겨 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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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탄생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나철 : 대종교이 창시자. 본명은 인영. 호는 홍함.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를 판대신들을 죽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중광 : 예전에, 덕망 있는 임금이 잇따라 나오는 일을 이르던 말

 

일제강점기에도 행사 진행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했고, 충칭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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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가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 노래 [출처 : 네이버]

음력이었던 개천절을 양력으로 바꾸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 심의회]의 심의결과 음/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란ㄴ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TMI 기념일 행사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사던 경하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

이 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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