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목적
바다 관련 사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할 목적으로 제정한 날이다.
TMI 5월 31일인 이유는?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한 것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유래
기념일 시초
1994년 11월,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를 계기로 해양 자유이용 시대에서 해양분할경쟁 시대로 바뀌게 되면서 해양을 둘러싼 국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자 이러한 국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21세기 해양시대를 맞아 세계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 기념일로, 해양수산부가 주관한다.
TMI 기념일 행사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던 완도에서는 5월 27일부터 5월 31일까지를 장보고 축제 기간으로 정해 전국 청소년장보고선발대회, 장보고 무역선 승선체험, 장보고배 전국 국악경연대회, 바다의 날 기념음악회, 해군함정 관람 등의 행사를 한다.
그밖에 지역별로 민/경 친선도모를 위해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초청해 경비함정 및 주요 장비 공개행사를 하는 한편, 해상 정화 및 치어 방류기념 축제 등을 벌이기도 한다.
해상수산부에서는 해양산업 발전에 기여한 민간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해양개발/해운항만/해양환경/수산진흥/해양안정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훈장/포장/표창 등을 수여해 해양산업 종사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국민들에게는 해양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다.
명칭 설명
원래의 이름은 [궁복]으로 전해지며, [삼국유사]에는 [궁파]라는 기록되어 있다. [장]이라는 성과 [보고]라는 이름은 당나라로 건너간 뒤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등 일본의 문헌에는 이름의 한자 표기가 [長寶高] 혹은 [張寳高]로 되어 있다.
장보고 일대기
당나라에서 활약하다.
친구인 정년과 함께 일찍이 당나라 서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을 지냈으며, 장보고와 정년은 용맹하고 씩씩해 말을 타고 창을 쓰는 데 이들을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귀국하여 청해진 설치와 해상무역 주도
그렇게 당나라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온 뒤 828년 흥덕왕(826~836)에게 당나라의 해적인 신라인을 노략하여 노비로 사고 파는 행위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하였고, 오늘날의 완도와 그 부속섬인 장도 일대의 청해에 진영을 설치하여 청해진으로 서남부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당나라에 [견당매물사]와 [교관선]을 보내고, 일본에는 회역사를 보내며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하였다.
왕위 쟁탈전에서 지고 장보고에게 의탁하다.
836년 흥덕왕이 죽은 뒤에 신라에서는 왕의 사촌인 김균성과 조카인 김제륭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결국 김균정이 살해되고 김제륭이 희강왕으로 즉위했다. 그러자 김균정의 아들인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와서 장보고에게 의탁했다.
군사를 일으켜 왕을 바꾸다
838년 상대등 김명이 희강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민애왕, 재위838~839), 김양 등이 병사를 모아 청해진으로 김우징을 찾아와 군사를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 839년 장보고는 김우징, 김양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 공으로 장보고는 신무왕(839)에게 감의군사로 임명되었으나, 신무왕은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죽고 그의 아들인 문성왕(839~857)이 왕위에 올랐다. 문성왕이 즉위한 뒤 장보고는 진해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고 반기를 들다 암살당하다.
845년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둘째왕비로 보내려 했으나 중앙의 귀족들이 섬사람의 딸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장보고는 청해진에 웅거하여 왕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846년(문성왕 8) 문성왕은 염장을 자객으로 보내 장보고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851년(문성왕 13)에는 청해진을 없애고 그곳 사람들을 벽골군으로 이주시켰다.
TMI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이 다르다?
[삼국유사]에는 신무왕이 자신을 도와주면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장보고에게 약속했고, 이를 어기자 장보고가 왕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편, 일본의 [쇼쿠니혼코우키]에는 842년 정월에 신라사람 이소정 등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장보고가 죽고 그의 부장인 이창진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염장이 병사들을 이끌고 이를 토벌했다는 사실을 전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장보고가 죽은 연대를 문성왕 8년(846년)의 일로 기록하고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과 다른 것이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장보고가 죽은 연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만들어진 계기
장보고는 일찍이 당나라의 쉬저우에 건너가 무령군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가 된 동포들의 침상을 보고 분개, 벼슬을 버리고 귀국하여 해적들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청해에 군영을 설치할 것을 왕에게 요청하였다.
설치 전략
장보고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중국과 일본 해로의 요해처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고 가라포에 성을 쌓아 항만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였다.
청해진 설치한 결과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서남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한 그는 당시에 성행하던 중국의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들어 동방무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결국 청해진은 중계무역장으로서 서남해로의 요해처 구실을 하였다.
'기념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곽재우 장군이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날" 6월 1일 의병의 날 (1) | 2024.02.11 |
---|---|
"세계보건기구(WHO) 담배와의 전쟁 시초"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 (1) | 2024.02.10 |
"기독교 중심의 기념일" 5월 21일 부부의 날 feat. 부부의 정조의무, 동거의무 (0) | 2024.02.07 |
"폐지되었던 성년례를 부활시킨 기념일" 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feat. 성년의식 (1) | 2024.02.06 |
"재한 외국인을 위한 기념일" 5월 20일 세계인의 날 feat. 다문화가정 (1) | 2024.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