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내용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날짜
매년 음력 1월 15일이다
의의/목적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선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즉, 풍요를 위해 지내는 명절이다.
TMI 우리 나라의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가지는 뜻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흥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우선 종제가 글허고, 줄다리기 같은 것들도 그 전형이 된다. 동제신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 일허게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은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 실제 농경을 위해서느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붙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단오가 큰 명절이기도 하였으나, 중부 이남에서는 7월 보름인 백중보다도 비중이 작았다. 중부 이남에서는 단오를 그렇게 큰 명절로는 여기지 않았다.
TMI 명칭에 대한 내용
정월 대보름은 한자어로는 [상원]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명칭이다. 그리고 상원, 중원, 하원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정월 대보름의 다른 명칭으로는 [원소절], [원석]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지모신 : 인간이 모시는 제사의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신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은 인간의 탄생과 안녕과 풍요를 주재하는 지모신이다.
태종실록 : 조선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용경 : 동지를 전후하여 못에 언 얼음의 갈라진 방향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알아보는 농점. [용갈이] 또는 [용의 밭갈이]라고도 한다.
역사/유래
정월 대보름의 시초
보름의 유래는 [삼국유사] 권1 [기이] 사금갑조에 나타나 있다. 까마귀가 소지왕을 인도하여 위급을 면하게 했고, 그 후로 매년 첫 번째 돼지/쥐/말날에는 백사를 삼가고 감히 동작을 아니하며, 15일을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지내니 지금에도 행하고 있다. 속말로 이것을 달도라 하니 슬퍼하고 근심해서 백사를 금기하는 뜻이다. 즉, 오기일과 찰밥으로 까마귀를 제사지내는 관습이 일연이 살았던 고려 후기에도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여기에도 찰밥의 유래가 거론되어 있다. 달도라는 말은 여기서는 오기일과 첫 번째 돼지날/쥐날/말날들의 속말로 백사를 삼가는 날로 되어 있다.
TMI 정월 대보름날이 설날만큼 비중이 큰 명절이라는 근거
최창수의 [한국의 세시풍속]을 보면, 12개월 동안세시풍속행사 총건수는 189건이다. 그 중 정월 한 달이 세배/설빔 등 78건으로서 전체의 거의 절반이 되어, 1년의 세시풍속 중에서 정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월 78건 중에서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세시풍속 항목은 40여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수를 넘고, 1년 365일에서도 이 하루의 행사가 5분의 1이 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가 동제나 줄다리기 등 뜻이 깊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임동권이 쓴 [한국 세시풍속]은 12개월에 총 192건의 세시행사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 정월 한 달에 102건이 있어서 전체행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그리고 정월 14/15일의 대보름날 관계 항목수가 55건으로 역시 정월 한달 102건의 반이 넘으면, 1년 전체의 4분의 1이 넘고 있다.
동제를 지내는 시일은 약 6,000동의 서면조사 통계로는 정초가 30%, 대보름이 40%, 10월 기타가 30%로서 대보름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시간도 대개 자정으로서 1년 열두 달의 첫 보름달이 충천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된다.
충천하다 : 하늘이 찌를 듯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르다.
신일과 달도 의미에 대한 기록
[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조에서 위 기록을 인용하고, 삼가는 날들을 여기서는 신일이라 기록하고 속말로는 달도라 하니 삼간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상으로 보면 신일이나 달도는 하나의 특정일을 가리키는 낱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봉유설]의 "동방 옛 풍속에 세수와 정월 첫 번째 쥐날과 말날, 2월 1일을 신일이라 한다"는 기록을 보아 알 수가 있다. 즉, 이상을 종합하면 세수(1월 1일)/첫 번째 쥐날/말날/돼지날/대보름/2월 1일들이 다 신일이고 달도이다. 이 신일이나 달도라는 말들은 이 명절과 뜻있는 날들에 마음이 들떠서 좋아하지만 말고, 삼가고 조심성 있는 마음가짐을 일깨우던 뜻에서 나왔다 하겠다.
TMI 다른 나라의 기록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상원(정월 대보름)은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부터 8대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그러나 특히 일본에서는 대보름을 [소정월]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은 양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일부의 북유럽나라들의 민속에서는 1월 14일을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투리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 제1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역법 : 천제의 움직임을 살펴 시간과 날짜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날짜와 시간을 계산하느 일은 농업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역법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의례들의 기록(행사 기록)
정월 대보름에 시행된 의례들을 통해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에는 상원 연등의 기록이[삼국사기], [신가본기]에 보이고 있다. 연등은 고려 초부터는 태조의 훈요십조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성행되었다. 고려 초의 상원 연등은 6대 성종 이후 중단됐다가 2월 15일로 복설해서 고려 말까지 계속 되었으나 2월 15일만 고수된 것은 아니었다. 이 상원 연등은 조선 초에 초파일 연등과 같이 시행되엇으나 태조 15년 이후 모두 중단되었다가 초파일 연등은 관등놀이로 민간에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TMI 정월 대보름날의 절식과 행사
절식으로서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기풍/기복행사로서 볏가릿대 세우기/복토 훔치기/용알뜨기/다리밟기/나무시집보내기/백가반 먹기/나무아홉짐하기/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
조선시대 기록
조선시대 초기의 문헌 기록으로 상원 내농작을 들 수 있다. [세조실록] 9년에 보면 [세속에 매년 상원일에 농가에서 농잠의 모양들을 차리고 한 해 풍년의 징조로 여겼다]고 민간의 상원 가농작의 풍속을 기록한 것이 보인다. 궁중에서도 농가의 가종작을 모방시키고 좌우편을나누어 경쟁까지 시키니 그것이 민간 풍속에서 온 것임을 말하는 데서 민간의 상원 풍속 기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TMI 작은보름도 있다?
대보름이 있듯이 작은보름도 있다. 작은보름에는 긴 장대를 세워 거기에 여러 가지 곡식을 달아놓는데 이것을 [화적] 또는 [낟가리대세우기]라고 하였다. 이 낟가리대에는 벼, 수수, 기장, 조, 피 등의 이삭을 달아 매고 목화를 심는 고장에서는 꼭대기에 목화송이를 달아맸다. 그리고 그 아래에 풍년을 염원하는 글을 쓴 깃발을 달았다.
낟가리대는 곳에 따라 마당에 세우기도 하고 외양간 뒤에 세우기도 하였다. 낟가리대를 세우면 어린이들이 나와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 주변을 돌았다. 이 낟가리대는 흔히 2월 초하루에 거두었다. 이것은 새해에도 낟가리대 만큼 높은 노적가리를 쌓을 수 있도록 풍년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농민들의 소박한 염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 내농작이 매우 정교해지다가 차차 도를 지나쳐서 폐단이 생기고 중신들 간에 중지 논의가 많다가 주종 말년 이후 궁중에서 중지된 듯했다. 그러나 민간에서 지금도 전승되고 있으니 이른바 낟가릿대 풍속이 그것이다. 신라 오기일, 고려의 연등, 조선시대의 가농작 등은 우연히 기록에 남은 소수의 예일 뿐이고, 이들과 동반해서 대보름의 많은 풍속들이 전승되어 왔다. 그 후의 대보름의 기록은 조선 후기의 세시기류들에 이르러서 매우 상세하게 나타난다.
TMI 정월 대보름의 줄다리기의 옛 관념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이 대보름날 행사였다. 즉,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
특히,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을 그렇게 여기는데, 여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 그것을 성행위로 여긴다는 관념들은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대보름날의 뜻은 이와 같은 행사들의 요점에서 특히 잘 집약된다.
기념일로 알아가는 상식
사금갑설화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간단 설명
신라 21대 소지왕에 관한 설화이면서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연못 서출지에 관한 전설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 기이편 제1사금갑조]에 실려 있다. 신이담에 속하며, [서출지], [둘 죽이고 하나 살리기], [오곡밥 먹는 유래]라는 부제가 붙기도 한다.
이야기 내용
488년 정월 대보름에 소지왕 천천정으로 행차하였다가 쥐가 사람소리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여 무사에게 뒤쫓게 하였다. 무사가 까마귀를 좇아 남쪽 피촌에 이르자 까마귀는 사라지고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와 봉투를 올렸다. 그 겉봉에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일관이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요, 한 사람은 임금을 뜻한다고 하며 왕에게 봉투를 열어볼것을 청하였다. 왕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거문고 갑을 쏘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활로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안에서 궁주와 승려가 정을 통하다 나왔다.
왕은 궁주와 승려르 처형하고 매년 정월 상해일, 상자일, 상오일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약밥을 지어 공양하였다. 그리고 노인이 나왔던 연못을 서출지라고 불렀다. 이 설화는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528년)되기 전에 있었을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갈등, 왕은 초월적 존재로부터 보호되는 신성한 존재라는 당시 일반백성들의 인식과 지명, 풍속의 유래 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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